프롤로그
내년 2월이면 쫑이가 우리 집에 온 지 10년이 된다. 처음 만났을 때의 쫑이는 티컵 강아지로 키우겠다고 하루에 사료 10알만을 먹어야 했던 생후 9개월 된 푸들이었다.
아내에게는 아무 말도 없이 데려온 쫑이. 쫑이 덕에 화목했던 결혼 15년 차 부부 사이에 한동안 갈등이 있었다. 지금은... 나보다 아내가 쫑이를 더 좋아하고, 우리 가족은 쫑이를 포함해 두 멍이와 두 냥이랑 함께 살고 있다.
2년 전 대학 동기에게 우리 집과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일의 발단은 동기의 아내가 길고양이를 입양하면서 시작되었고, 둘 사이의 냉전은 그야말로 제3차 세계대전을 방불케 했다. 한 번도 언성을 높이지 않았던 부부가 길고양이 덕에 이혼 일보직전까지 갔었다. 지금은?... 길고양이를 입양한 아내를 남편이 이해하고, 다시 예전처럼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한다는 것, 우리와 다른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 그건 나와 내 동기 가족의 사례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다름'을 '틀림'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와는 다른 그 존재'를 부정하려고도 한다. 하지만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할 때,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순식간에 해결된다는 걸 나는 경험했다.
휴먼 다큐멘터리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
이 글에서는 우리와는 다른 존재 '길고양이'를 다룬 한 편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1월 11일, 목영EnM이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를 개봉했다. 영화에는 불편한 몸에도 밤낮으로 길고양이들을 돕는 캣맘 권나영 씨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영화를 만든 김희주ㆍ정주희 감독은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동기로, 생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작품 기획을 시작했다. 이들은 페이스북 그룹 '길고양이친구들'을 통해 권 씨의 사연을 알게 됐고, 이를 인연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됐다고 한다.
캣맘과 길고양이가 주인공인 영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에 대해 정주희 감독은 이렇게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의 감독 정주희라고 합니다.
저희 영화는 길고양이의 동반자로 살아가는 한 여성, 권나영의 삶을 담은 영화입니다. 나영 님은 뇌병변 장애를 갖고 태어났으며, 신장 질환으로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 투석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 휠체어를 타고 골목을 누비며 길고양이의 끼니를 챙기고, 동물 구조와 보호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나영 님을 움직이게 한 것은 하나였습니다. 사람과 동물, 우리 모두 마땅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를 통해 저희는 역으로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말인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싸늘한' 시선
영화는 우리와 함께 공존하는 길고양이에게는 '밥'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해,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라는 '반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 공존하는 길고양이에게는 허기진 배를 채워 줄 밥이 꼭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그리 녹록지 않다... 내가 쫑이를 집에 데려왔을 때, 그리고 동기의 아내가 길고양이를 입양했을 때 보여줬던 아내와 동기의 모습처럼... 사회는 '길고양이'가 자신들에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 개봉 이후 일부 누리꾼에 의해 '별점 테러'를 당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누적 관객수 745명 대비 평점은 1,147명이 등록하는 등 부정적인 평점과 사실과 다른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고 한다.
영화를 공동 연출한 김희주ㆍ정주희 감독은 "인간이 파괴한 생태계로 인해 이미 온전한 삶을 뺏긴 동물들에게 '인간에게 피해를 주니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금껏 인간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한다"며, "영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를 향해 쏟아지는 동물, 약자 혐오를 마주하는 지금의 현실이 진짜 '다큐멘터리'다"라고 강한 유감을 표했다.
영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 댓글 중 사실과 다른 내용은 어떤 것이 있을까. 김희주ㆍ정주희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답변한다.
Q. 고양이에게 사료나 음식물을 주는 행위로 쓰레기가 늘어나는 등 동네 미관이 해쳐진 것 아닌가?
A. 그렇지 않습니다. 권나영 씨는 '캣맘' 활동을 하며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고양이에게 밥을 준 뒤 방치하고 떠나지 않고, 고양이가 사료를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후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떠납니다. 먹이를 급여받은 고양이는 음식물 쓰레기를 파헤치거나 쓰레기봉투를 훼손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배고픔이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Q. '캣맘' 활동에 항의하는 주민에게 거친 언행을 한 적이 있나?
A.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권나영 씨는 '캣맘' 활동에 항의하는 주민이 있으면 공격적으로 대하기보다 상황을 침착하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며 활동합니다.
Q. 권 씨의 '캣맘' 활동으로 인해 고양이 개체 수가 더 늘어난 것 아닌가?
A. 그렇지 않습니다. 권나영 씨를 포함해 대부분의 '캣맘'은 개체 수 조절을 위해 길고양이의 수를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TNR사업(길고양이를 인도적 방법으로 포획해 중성화 수술 후 원래 포획한 장소에 풀어주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길고양이가 중성화되면 동네 길고양이의 개체 수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으며, 번식기의 울음소리도 내지 않게 됩니다.
Q. '사료 급여 행위'만으로 길고양이를 보살폈다고 할 수 있나?
A. 권나영 씨는 길고양이에게 사료 급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고양이를 구조, 치료해 새로운 가족을 찾아 입양 보내는 일까지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권 씨를 통해 새 가족을 만난 고양이 수만 해도 수십 마리에 이릅니다.
영화에 달린 댓글들은 우리 사회가 '캣맘'과 '길고양이'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아닐까. 나 역시 캣맘과 길고양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면, 위에 나온 질문들과 똑같은 질문을 했을지도 모른다.
길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시각화된 자료가 필요하다
2019년 8월, '순천만 세계동물영화제'에서 김선옥 감독의 단편 영화 '아내의 고양이'를 봤는데, 영화의 내용이 앞서 얘기한 대학 동기네 가족의 이야기와 비슷했다. 영화를 먼저 봤기에 동기에게도 이 영화를 꼭 보라고 해주고 싶었는데, 어디에 영화가 있고 어디에서 봐야할지 몰라 얘기하지 못했었다.
'길고양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였을까. 젊은 청년 두 명이 '길고양이'와 '캣맘'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든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나도 아직은 이 영화를 관람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갖고 있는 '길고양이'와 '캣맘'에 대한 짧은 지식에 기초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영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가 나에게 어떤 감동을 줄 지 사뭇 기대가 된다.
허심탄회하게 '길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하자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나는 이 영화에 평점을 주거나 댓글을 달지 않는다. 그리고 이건 네티즌들이 보여줘야 할 지극히 정상적인 자세일 것이다.
영화가 상영되면서 들려오는 안타깝고 가슴아픈 이야기, '별점 테러'. 하지만 젊은 두 감독이 한 다음의 말이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인간이 파괴한 생태계로 인해 이미 온전한 삶을 뺏긴 동물들에게 '인간에게 피해를 주니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 이 말속에 너무나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누적 관객수 745명 대비 평점은 1,147명이 등록'했다는 것... 이는 지금껏 갖고 있던 '길고양이'와 '캣맘'에 대한 선입견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영화를 관람하지도 않고 그 영화를 평가한다는 건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다.
처음 쫑이를 데려왔을 때 내 아내가 보였던 반응, 그리고 동기의 아내가 길고양이를 입양했을 때 보였던 내 동기의 반응...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나야 동물이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당시 나는 아내와 쫑이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동기의 아내도 길고양이와 남편 중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와 동기네 가족 모두 진통의 시간을 겪었고, 대화가 단절된 침묵의 시간도 있었다. 그리고 최종 결정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살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지금 두 가족은 모두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인정하며 반려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길고양이와의 공존이 현실적인 문제라면, 이제 이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건 어떨까. 영화를 보고, 당당하게 옳고 그름을 이야기해 보는 것이다. 비겁하게 '별점 테러'로 누군가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말고, 솔직한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해 보는 것이다.
에필로그
몸이 불편한 캣맘, 그리고 그 캣맘이 돌보는 길고양이. 이들은 모두 우리 사회의 약자 '언더독'이라 할 수 있다. 젊은 두 감독이 우리 사회의 '언더독'에 주목하며 영화를 선보였다.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길고양이들의 모습... 사람을 피해다닌다거나, 쓰레기통을 뒤진다거나,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이런 모습 속에 갇혀 길고양이의 다른 면은 보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쥐를 잡기 위한 필요에서 옆에 두었던 고양이를 필요가 없어지자 거리를 내몰고 있는 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측은지심', 캣맘들은 길고양이에 대한 미안함을 가진, 어찌보면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을 우리를 대신해 해주고 있는 고마운 사람들이기도 하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는 이런 캣맘들의 마음을 이야기 하고 싶어, 반어적인 표현으로 강조한 말이라 하겠다. 그리고 영화의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공감하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캣맘과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 싸늘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 시선이 '별점 테러'와 같은 방법으로 표현되었는데,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길고양이와 캣맘의 이야기를 다룬 감동 휴먼 다큐멘터리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가 상영 중이다. 우리 사회의 '언더독' 이야기를 담은 따뜻한 영화, 길고양이와 캣맘에 대한 시각 자료가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작품성뿐 아니라 시사적인 면에서도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진정 이 영화를 보고 '별점 테러'를 할 것인지, 영화에 담긴 메시지를 발견하고 감동 이상의 그 무언가를 얻을 것인지는 여러분의 몫이다.
'길고양이'와 '캣맘'에 대한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줄 영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 직접 확인하고, 평가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하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