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케빈
사랑스런 우리 집 댕댕이의 조상이 늑대였다는 것을 종종 잊고 지낸다. 개는 가축화된 동물이다. 지금도 개의 행동에는 조상인 늑대와 비슷한 점이 남아 있다.
개는 무리생활에 익숙하고, 자기 무리의 우두머리로서 사람에게 복종하며, 반려인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을 자기가 속한 무리의 영역으로 여겨 지키려고 한다. 개는 인간과 생활하면서 사회화 과정을 거쳤지만 여전히 ‘야성의 부름’에 반응하는 본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야성’은 사납고 거친 늑대의 본능이 아니다.
‘개’의 시점에서 그들의 조상이 살았던 아름다운 대자연이 주는 야성을 한 번쯤 공감해 본다면 우리 집 댕댕이의 위대한 존재감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알래스카 대자연의 세계를 그린 『야성의 부름』
개는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 소재 중 하나다. 심지어 장편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전 세계의 위대한 개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장편’으로 꼽히는 『야성의 부름(Call of The Wild)』 (잭 런던, 1903)은 썰매개 신세가 된 주인공 벅이 알래스카 대자연에 적응해 가며 대장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개’의 시점에서 풀어낸 작품이다.
작가 잭 런던은 40년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소설의 주인공 손튼처럼 우여곡절 많은 삶을 살았다. 그는 공장노동자와 선원, 도둑과 부랑자, 알래스카 금 채취꾼과 공장운영자, 작가와 정치가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1897년 클론다이크 골드러시에 합류해 알래스카까지 갔던 경험을 바탕으로 『야성의 부름』을 썼는데, 금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이 소설로 전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20세기 초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며 잊혀 가던 야성의 가치를 재조명한 잭 런던은 미국 자연주의 문학을 계승한 작가로 평가받았다. 『야성의 부름』은 출간된 1903년 첫 해에만 1만 부 이상 팔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지금까지 8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돼 전 세계에서 꾸준히 사랑 받는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사상서를 탐독한 잭 런던은 작품에서 다윈의 ‘적자생존’과 니체의 ‘초인’ 사상 등을 자연스레 풀어 냈다.
거친 야생에 적응해 가면서 벅은 잊고 살던 ‘야성의 힘’을 빠르게 되찾는다. 그리고 벅은 썰매개 무리의 대장 스피츠의 시기와 함정에 맞선다.
마지막 대결에서 철저한 계산과 이성적 판단을 앞세운 스피츠가 기선을 제압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내면의 용기와 의지를 일으켜 세운 ‘니체적 초인’ 벅이었다. 이성의 힘으로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거세던 20세기 초, 잭 런던은 역설적으로 내면에 잠든 야성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고 일깨웠던 것이다.
동물을 주인공으로 해 어린이 독자층에서도 사랑받고 있는 『야성의 부름』은 한국어판도 여럿 있다. 그 중 ‘시공주니어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가 49번째로 소개한 『야성의 부름』(2015)은 1903년 초판본에 실린 글과 필립 R. 굿윈, 찰스 리빙스턴 불의 삽화를 고스란히 실은 유일한 한국어 판본이다.
거기에 누구보다 다채로운 삶을 산 잭 런던의 생애와 그 삶이 묻어난 작품 세계, 클론다이크 골드러시의 시대적 상황을 풀이한 화보를 더해 어린 독자들이 최고의 모험 소설을 제대로 즐기고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30번째로 이름을 올린 『야성의 부름』(2010)은 한국문학 평론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권택영 평론가가 완역해 완성도 높은 번역본으로 평가받는다..
네 번째 각색, 영화 <콜 오브 더 와이드>
『야성의 부름』은 발간 이후 이미 영화 두 편과 TV 드라마 시리즈 한 편으로 제작됐다. 2020년에는 해리슨 포드가 노인 손튼을 맡아 연기한 영화 〈콜 오브 와일드(Call of The Wild)〉로 네 번째 각색됐다.
개가 주인공이지만 영화는 한 인간의 성장드라마와 다름없다. 원작에서도 내레이션 형식으로 벅을 모험, 성장극의 주체로 의인화했는데, <콜 오브 와일드>에서는 좀더 직접적이다. 모션 캡처와 CG을 이용해 벅에게 인간적 표정을 더욱 생생하게 덧입힌 것이다.
처음 눈을 본 벅의 모습에 대한 원작의 기술과 영화의 구현 장면을 비교해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차가운 지면 위로 첫발을 내딛자 벅의 발이 진흙처럼 부드럽고 흰 것에 빠졌다. 그는 펄쩍 뛰며 콧김을 내뿜었다. 흰 것들이 공중에서 더 많이 날리고 있었다. 그는 몸을 흔들었으나 흰 것은 그를 향해 계속 내려왔다. 그는 킁킁 냄새를 맡다가 혀에 대고 핥아보았다. 얼핏 불처럼 느껴졌으나 이내 그 맛이 사라졌다. 그는 갸우뚱했다. 다시 한 번 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와하며 웃음을 터뜨렸고 그는 이유를 몰랐지만 조금 창피했다. 그가 생전 처음 보는 눈이었다.’
- 『야성의 부름』 (잭 런던, 민음사, 2010)에서
낯선 환경에 던져진 후 벅이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한 편의 드라마는 감동이지만, 야심 찼지만 어색하게 겉도는 CG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가 책보다는 훨씬 순해서 원작의 강렬한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책을 더 추천한다.
개를 통해 발견하는 내면의 부름
조상이 늑대인 개는 아주 짧은 기간에 ‘개’가 되었다. 인간이 ‘인간’이 된 것보다 빠르다. 우리는 흔히 성격이 나쁜 사람을 ‘개 같은 성격’이라고 업신여기지만, 개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개는 붙임성 좋고 아주 사교적이다. 진득하니 충성심도 강하다. 좀체 주인을 바꾸지도 않는다.
개의 특성은 늑대보다 오히려 인간에 더 가깝다. 심지어 인간이 흔히 갖는 여러 정신질환도 걸린다. 사랑받지 못한 개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은, 사랑받지 못한 인간이 보이는 심리적 증상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개를 통해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알래스카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상처 입은 자를 향한 따뜻함, 불굴의 의지, 내면의 용기를 일깨우는 대자연의 부름에 반응하는 벅의 야성에 공감했다면, 우리는 벅을 통해 우리 자신의 내면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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