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정서윤 작가의 사진 에세이집 『무심한 듯 다정한』을 소개하는 글이다. 출판사인 '안나푸르나'는 이 책에 대해 '고양이와 칠순 노모가 만들어가는 소소한 행복, 무심한 듯 다정한 가족의 초상'이라고 소개한다. 칠순 노모와 고양이 순돌이가 교감하며 진정한 가족이 되는 과정을 기록한 책, 『무심한 듯 다정한』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 편집자 주 -
글 케빈
사진 정서윤 작가 인스타그램
2013년 6월 29일이었다. 귀가하던 길에 집 근처에서 어슬렁대고 있는 길고양이를 만났다. "야옹아!"하고 무심히 인사를 건넸더니 알아듣고는 다가왔다. 지금의 노랑둥이 고양이 '순돌이'였다.
삐쩍 마른 몸에 검댕이 얼룩을 군데군데 묻힌 안쓰러운 모습이었는데, 초면인데도 다리에 휘감기며 애교를 부렸다. 길에서 만난 순돌이에게 가족을 찾아주고 싶었지만 남루한 모습에 다 큰 고양이라 입양 가정을 찾기 어려웠다. 그때부터 밤 챙겨 주는 사이로 순돌이를 거의 매일 만났다.
이웃이 버리고 간 고양이 같아 더 마음이 쓰이던 순돌이는 유난히 사람을 잘 따랐다. 순해 빠진 성격 탓에 동네 길고양이의 텃세에 시달렸고, 한 번은 귀에 구멍이 날 정도로 심하게 물리기도 했다. 게다가 순돌이의 길동무였던 이웃집 외출고양이의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나서는 녀석을 길에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길에서 순돌이를 귀여워했던 엄마는 정작 집에 데려오는 것은 반대햤다. 8년을 함께 산 토끼 밍키를 떠나 보낸 지 얼마되지 않아 가족 모두 힘들어했고, 반려동물은 다시 들이지 말자고 다짐한 터였다. 완강했던 엄마를 간신히 설득한 끝에 순돌이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만난 지 5개월 만이었다.
작은 존재가 가져온 무뚝뚝한 가족의 변화
가족이라고 해서 늘 다정하고 살가운 것은 아니다. 속마음을 털어놓는 관계라도 서로 상처도 주고받는다. 칠순이 넘은 엄마도 마음이 상하면 얼른 독립해서 집 나가라고 '나'에게 호통치고, 작은 일에 삐치기도 한다. 하지만 무심하게 들리는 엄마의 말에는 다정함이 스며있다. 순돌이를 안을 때도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엄마의 마음을 어찌 모를까.
무심한 듯 다정한 엄마의 태도는 순돌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순돌이에게 “아프면 돈 든다, 아프지 마라” 하지만, 순돌이 이마에 작은 상처가 났을 때는 “일요일도 여는 병원을 가보자”며 발을 구르셨다. 순돌이가 큰 수술을 받고 며칠 동안 먹지 못할 때는, “괜히 멀쩡한 순돌이를 다 죽게 만든 것 아니냐”며 눈물도 흘리셨다.
순돌이도 무심한 척 다정하게 가족을 향한 관심을 내려놓지 않는다. “손 한 번 달라”는 엄마의 간청을 한 번 들어주지 않을 만큼 새침하지만, ‘내’가 퇴근해 집에 오면 뽀뽀 인사로 반기고,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늘 엄마와 내 곁을 맴돈다.
순돌이가 오면서 ‘나’의 삶도 변했다. 순돌이가 새벽마다 '고양이 알람'을 우는 바람에 늦잠 자는 습관도 고치고 아침형 인간이 됐다. 또 집에 돌아와 순돌이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밖에서 시달린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었다. 무뚝뚝한 아빠의 변화는 더 놀랍다. 순돌이의 마음을 얻고 싶어서 슬그머니 다가가 앉고, 베란다에 날아 오는 새들을 실컷 구경하라며 전망대까지 만들어 주셨으니까.
애정 표현에 서툴던 우리 가족은 순돌이 앞에서만큼은 마음이 편안해져서, 잘 웃고 수다도 늘어난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상대가 힘들어 하면 무심한 척 곁에 함께 있는 순돌이와 엄마 아빠. 혈연은 아니어도 서로에게 위로와 치유가 되는 이 관계야말로 진정한 '가족'이 아닐까.
엄마는 외출하고 돌아오면 순돌이가 가장 먼저 달려와 반겨준다며, “장성한 딸은 늦게 들어오고 무뚝뚝한 남편과는 별다른 대화가 없는 덤덤한 집안 분위기에 순돌이가 있어 웃을 일이 있고, 순돌이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엄마와 고양이가 함께 한 시간의 기록
사랑을 주고받는 가족이 생기면서 순돌이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상대적으로 입양이 힘든 성묘(成猫)도 충분히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사진이 취미라서 틈틈이 순돌이와 함께 한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순돌이만 찍었는데 엄마와 순돌이가 함께 있을 때가 잦아서 둘이 함께 사진에 담기는 일이 많았다. 둘의 사진을 SNS에 올리자 사람들은 순돌이 혼자 나온 사진보다 엄마가 함께 나온 사진들을 더 많이 아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주었다.
길고양이가 선사한 선물 같은 깨달음
솔직히 밍키처럼 순돌이와 예정된 이별에 대해서는 늘 생각하면서도 정작 나이 든 엄마와 이별할 것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철없는 ‘나’는 엄마가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모양이다.
순돌이 사진 작업을 하면서 차츰 엄마의 여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사진 속 백발의 엄마는 여전히 곱고, 카메라 앞에 설 때면 예쁘게 찍히고 싶은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삶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간직한 엄마의 모습을 더 늦기 전에 기록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지금처럼 무심한 듯 다정하게, 엄마랑 연애하듯이 소소한 추억을 만들고 기록해 가고 싶다. 이 모든 것은 순돌이가 가족이 되면서 선사한 선물 같은 깨달음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
『무심한 듯 다정한』 가족의 나날
할머니와 순돌이의 나날을 담은 『무심한 듯 다정한』 (정서윤, 안나푸르나, 2016)의 따뜻한 사진과 짧은 글을 넘기다 보면, 우리 앞의 작은 존재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채워주는지 실감하게 된다. 도도함과 다정함이 느껴지는 순돌이를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엄마 미소’를 짓게 될지도 모른다.
『무심한 듯 다정한』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의 소중함과 다정함을 일깨워준다.
『무심한 듯 다정한』의 저자 정서윤 작가는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현재 부산에서 장애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2013년부터 순돌이와 노모의 무심한 듯 다정한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정 작가의 인스타그램(@fly_yuna)에서 순돌이와 꽃비가 있는 본가, 진돗개 봉순이가 있는 우포 신혼집을 오가며 남기는 사랑스런 가족의 일상을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