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케빈
마약중독자 홈리스와 상처 입은 길고양이가 운명처럼 만나 소외 받던 서로를 치유해 가는 감동 실화를 기억하는 펫팸족들이 많을 것이다.
부서진 기타 하나를 들고 런던 거리에서 버스킹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던 제임스 보웬(James Bowen)은 2007년 커다란 초록눈을 가진 길고양이, 밥을 만나면서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몇 푼 안 되는 전 재산을 털어 밥을 치료해 주고, 어디든 밥을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버스킹을 하거나 홈리스 지원을 위한 잡지 ‘빅이슈’를 팔 때면, 스카프를 두른 밥이 함께 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매력 투성이 밥 역시 투명인간 취급을 받던 제임스가 조금씩 용기를 다시 일어서고 새 삶을 살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조앤 롤링’을 제친 베스트셀러,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이 감동 실화는 2012년 3월 영국에서 에세이 『밥이라는 이름의 길고양이(A Street Cat Named Bob)』로 출간되어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40개국에서 800만 독자들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전했다. 한국에도 따뜻한 이야기를 소개해 온 안진희 씨가 2013년 번역해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해리 포터』의 저자 조앤 K. 롤링의 책을 제치고 영국 <더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선데이 타임즈> 베스트셀러 10위권에 6주간 머물며 화제를 모았다. 제임스 보웬은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얻었고, 밥 역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가 되었다.
밥 덕분에 마약도 끊고 새 삶을 살고 있는 제임스는 “돈은 밥과 함께 살 작은 집만 있으면 충분하다”며 ‘블루크로스(BLUE CROSS)’라는 이동식 동물병원의 운영기금을 마련하는 데 사회운동가로서 앞장서고 있다. 제임스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오는 팬들을 위해 밥과 함께 일주일에 두 차례 버스킹 공연을 이어오기도 했다.
영화로 제작된 어깨냥 ‘밥’ 이야기
제임스와 밥의 특별한 관계를 담은 책이 큰 인기를 얻자, 이들의 사연은 2016년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로도 만들어졌다. 10년 동안 화제가 되며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기 때문에 감독과 제작진은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선별했고 이것을 임팩트 있게 담아냈다.
영화에는 실제 사연의 주인공 밥이 직접 자신의 역할로 출연해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높였다. 밥은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여섯 마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연기했다. 크레딧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린 밥의 연기는 해외 유력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중 하나는 책으로는 느낄 수 없는 음악이다. 영화 OST는 오스카와 골든 글로브에서 수상한 음악 감독 데이비드 허슈펠더와 밴드 '노아 앤 더 웨일’의 리더이자 영국의 대표 싱어송라이터 찰리 핑크가 맡았다. 이들은 제임스와 밥의 기적적인 만남과 인생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이들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표현해냈다.
대표곡 ‘Satellite Moments’는 인생을 ‘인공 위성’에 비유한 곡으로 “우리의 삶은 계속 돌고 도니까요. 여기에 있다 사라지는 위성처럼”이라며, 힘든 시간도 언젠가 지나간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노래한다. 또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일상에 지친 많은 팬들에게 힐링을 안겨줬다.
세계인의 반려묘 밥, 이젠 안녕
하지만 『밥이라는 이름의 길고양이』를 펴낸 출판사 호더 앤 스타우튼은 지난 2020년 6월 15일, 밥이 1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제임스 역시 책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밥의 죽음을 알렸다. 제임스는 “밥이 자신의 생명을 구했고 나에게 친구 이상이었다. 내가 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주었다. 그는 내 곁에서 내가 잊고 있던 삶의 방향과 목표를 되찾아 줬다”고 추모했다.
그는 “밥은 그동안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밥 같은 고양이는 다시 없을 것”이라며, “내 인생에서 빛이 사라진 것 같다. 결코 그를 잊지 못할 것”이라며 슬픔을 나타냈다.
폴 맥네임 ‘빅이슈’ 런던 편집장도 “무엇보다 제임스 보웬의 삶을 바꾼 밥은, 그의 삶을 바꾸고 나서 세상을 변화시켰다. 밥이 빅이슈 표지에 등장할 때마다 독자들은 행복해했다. 그가 기회와 희망을 대표하고, 누군가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라며 조의를 표했다.
유작이 된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2>
밥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서 2020년 12월 24일 개봉한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2>는 밥의 유작이 되었다. 2편은 여전히 런던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며 빅이슈 판매원으로 살아가는 제임스와 그의 어깨냥 밥의 전편 이후 이야기를 담았다. 둘은 함께 살며 떨어질 수 없는 소울메이트가 되었지만, 사랑과 마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경제 문제와 외부 압력으로 떨어질 위기에 놓인다.
전편 이후 밥은 4년이 흘렀지만 정밀 건강검진을 받고 수의사로부터 재출연해도 좋다는 소견을 받아 2편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전편에서 밥의 대역을 맡았던 레오, 자파 등 다른 고양이들도 함께 출연했다. 어깨에 올라타 있거나 버스킹하는 장면 등 클로즈업과 야외 촬영은 밥의 담당이었고, 뛰어다니고 점프하고 가만히 있는 장면은 대역 고양이들이 연기했다. 특히 미모를 뽐내는 장면은 모두 밥이 맡았다는 후문이다.
2편에서는 제임스도 직접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해 촬영현장에서 감독과 얘기 나누며 자신과 밥의 진솔한 이야기를 영화가 디테일하게 잘 담아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한편 2편의 연출을 맡은 찰스 마틴 스미스 감독은 동물과 인간이 어울려 살아가는 작품을 여러 편 선보여왔다. 디즈니 영화 <에어 버드>(1997)에서 농구에 능숙한 개와 소년의 이야기를 필름에 담아 골든 릴 어워드에서 캐나다 최고 흥행 영화상을 수상했고, 이후 꼬리 잘린 돌고래와 소년의 실화를 영화화한 <돌핀 테일>(2011)로 전 세계에서 흥행 수익으로 1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어 웨이 홈> 등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발표하며 동물을 가장 잘 이해하는 감독으로 입지를 굳혔다.
전편에 이어 2편 속 겨울 감성이 가득한 OST도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다. 캐롤 ‘Deck the halls’, ‘Joy to the world’을 비롯해 ‘Jingle bell’을 깜찍하게 개사한 ‘징글밥’과 ‘Coming back to me’, ‘Invisible Christmas’ 등 크리스마스 시즌에 헤어질 위기에 처지에 놓인 두 주인공의 상황을 표현한 가사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하나뿐인 가족 밥을 혼자 힘만으로는 온전하게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제임스의 모습은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가족과 반려동물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그런 제임스와 밥이 헤어지지 않도록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는 친구, 이웃과 많은 사람들이 보내는 응원은 세상 어떤 형태든 모든 가족들의 행복을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새해를 맞이하며, 지난 한 해 수고한 모두에게 책이든 영화든 제임스와 밥의 이야기로 따뜻한 마음을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