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케빈
사랑에 빠진 사람은 시를 쓴다. 그것이 흥겨워 절로 나오는 콧노래든, 꾸욱꾸욱 눌러 쓴 연애편지든 모두 시가 된다. 사랑에 빠지면 그것만큼 삶을 촉촉하고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것도 없다. 삶이 건조하다고 느낄 때 돌아보면 사랑의 부재가 주는 헛헛함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알랭 바디우는 사랑은 삶의 재발명이라고 했나 보다. 그리고 여기 반려견과 사랑에 빠진 시인들이 있다.
반려견을 향한 사랑의 찬가
“오늘의 구름과 오늘의 나무. 신비로운 오늘의 새소리를 들어봐. 모두 호두가 알려준 것이다. 가끔은 개가 천국의 파견자는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의 어두운 장소들을 단숨에 밝혀놓은 이 작은 개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다.”
유계영 시인은 사랑하는 ‘호두’와 산책을 나섰다 삶이 건네는 재발명을 깨닫는다. 반려견의 산책길에 따라나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시인은 “개들은 항상 그런 식이다. 인간보다 더 맑게, 인간을 용서할 줄 안다. 행복할 때에도, 슬플 때에도 솔직하게 흔들리는 꼬리처럼”이라며 사랑의 찬가를 부른다.
민구 시인은 15년 동안 한 가족으로 살았던 ‘복자’를 떠나보냈다. “나는 빵이나 치킨 같은 걸 주면 개가 죽는다고 나무랐지만, 우리는 맛있는 걸 먹을 땐 상 밑에 개가 먹을 약간의 것을 몰래 덜어 놓고 먹었다”. 시인은 ‘복자’를 추모하며 다음 생에서는 ‘너의 개’가 되겠다는 애절한 마음을 연애편지 같은 시로 써 내려간다.
다음 생이 있다면,
죽지 않는 나라에서
계속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이다음에는 너의 개가 될 게
더 벌어지지 않는다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네가 나를 따라잡는다면
우리는 서로의 거리를 잊고
각자 어울리는 이름을 새로 지어주자
- 시 <이어달리기> 중에서
반려견과 사랑에 빠진 시인들
반려견과 사랑에 빠진 시인들은 수없이 많다.
강지혜 시인은 제주로 이주한 2016년 태어난 ‘신지’와 함께 산다. 위기 때마다 ‘귀여움만이 나를 구원한다’는 주문을 외운다. 강아지와 아기를 함께 돌보는 하루하루가 힘들지만 구원은 엄청나다고 고백한다. 김상혁 시인은 파주에서 아이와 강아지, 여섯 고양이를 돌보며 살고 있다.
남지은 시인은 14년 전 아빠가 오토바이에 싣고 온 아기 시추 ‘짱이’를 만났다. 지금은 어른이 된 ‘짱이’의 껌딱지 보호자다. 민구 시인은 ‘복자’의 오빠였고 지금은 ‘뭉치’, ‘코코’, ‘까망’이네 형이다. 이들과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가방 속에는 늘 개똥을 치울 여분의 봉지가 있다.
성다영 시인은 유기견 ‘오디’와 함께 산다. 정다연 시인은 ‘밤이’, ‘아롱이’와 산책하고 함께 뒹구는 한가로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최현우 시인은 ‘코코’와 함께 살고 있다.
유계영 시인은 ‘호두’와 사랑에 빠져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변화됐는지 짧은 산문에 담았다. “사랑의 놀라운 능력 중 하나는 존재를 흐르게 한다는 점이다. 나는 내 안에 틀어박힌 방안퉁수였으나, 땡볕과 맹추위에도 눈곱을 떼고 집을 나서는 산책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호두가 개일 리 없다”고 단언한다.
댕댕이 시집,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
이렇듯 개와 함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시인들이 개와 함께한 시간에 대해 시와 산문으로 답했다. 시집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 (김상혁 외 19명, 아침달, 2019)에는 김상혁, 박준, 송승언, 심보선, 안미옥, 유계영, 임솔아 등 반려견과 함께 사는 스무 명의 시인이 쓴 40편의 시와 반려견과의 일화를 다룬 20편의 짧은 산문이 담겼다.
시집에서 남지은 시인은 “개와 함께한다는 것은 나 아닌 한 생을 돌보는 것. 태어남부터 사라짐까지 한 존재의 반짝임이 나에게 스며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박시하 시인은 개와 함께한 이후 자신은 “개의 시인”이 되었으며 “덕분에 세상을 보는 창이 밝은 색 필터를 씌운 것처럼 환해졌다”고 고백한다. 또, 심보선 시인은 강아지들을 키우면서 죽음과 이별을 배웠고 자신의 영혼의 일부는 분명 강아지들이 키웠노라 적었다.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의 각 챕터 표지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아보가 시인과 반려견의 캐리커쳐를 그려 넣고, 시인과 반려견이 함께 찍은 사진도 담아 뭉클함을 더했다.
안미옥 시인은 “내가 어떤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나여서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것. 가늠할 수 없는 환대라는 게 있다는 것을 개는 알게 해준다”고 기록했다.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 를 읽으면 그 사실을 모든 책장에서 깨닫고 목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반려견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오늘 하루 우리도 시인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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