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대산 을수골 할아버지와 반려견들의 산중일기
"개라도 있으니까 내가 농담이라도 하고 지내지"
강원도 홍천 오대산, 그중에서도 골짜기가 을(乙) 모양으로 굽이졌다고 해 을수골이라 불리는 계곡, 그곳에 바깥세상 사람들은 모르는 '산중 낙원'이 있다. 겨울이면 최대 영하 17도까지 내려가는 매서운 을수골의 겨울을 40년 넘게 겪어온 이규환 할아버지.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인적 드문 곳이지만 할아버지의 겨울은 외롭지 만은 않다.
오매불망 할아버지 곁을 지키는 충견 '강이'와 강이의 첫째 딸 '백구', 할아버지만 보면 좋아서 흥을 주체 못하는 '검둥이', 곧 스무 살이 되는 장수견 '대한이'까지.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개들이 배 안 곯게 밥 챙기랴, 춥지 않게 난롯불 때랴, 거기에 갓 태어난 다섯 마리 강아지들까지 돌보고 나면 할아버지 일상은 적막하긴 커녕 분주하기까지 한데...
산 사나이라고 해서 이 할아버지가 무뚝뚝할 거라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
성대모사에, 상황극에, 개들과 농담까지 주고받는 재능부자 할아버지!
엉뚱한 매력의 소유자 이규환 할아버지와 듬직하면서 애교까지 만점인 단짝들의 산중일기가 시작된다.
"개가 내 단짝인데, 얼마나 내 농사를 도와주는데. 새끼 낳았으니 미역국 끓여줘야지"
개들을 향한 할아버지의 애정표현은 조금 특이하다. 말로는 안 예쁘다면서 애교부리는 강이를 보면 털이 반질반질 해지도록 쓰다듬어 주고, 검둥이가 너무 달라붙어 귀찮다 하면서 그 모습이 예뻐 눈을 떼지 못하는, 말과 행동을 다르게 표현하는 게 바로 할아버지의 사랑법.
요즘 특히 할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는 건 강이와 강이의 새끼인 다섯 마리 강아지들. 지난 해 12월 끝자락에 태어난 다섯 마리의 강아지들에게 할아버지는, 을수골에서 태어났으니 모두 '을순이'라며 이름까지 붙여줬다. 그 '을순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에 할아버지는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 기쁨만큼이나 다섯 마리 강아지 육아로 힘에 부쳐하는 강이가 걱정이다. 먹성 좋은 새끼들에게 하루 종일 젖을 물려야하니 잠깐의 휴식도 힘들 뿐더러, 강아지들이 슬슬 이빨이 나면서 강이 젖을 깨무는 탓에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 보다 못한 할아버지가 결국 특단의 조치에 나섰다. 강이에게 잠시의 해방감이라도 주기 위해 할아버지가 선택한 방법은?
"내 마음은 네 마음에 들어갈테니 네 마음은 내 마음에 들어와라"
을수골 외딴 곳에 자리한 할아버지의 집. 이웃이 있기는 하나 도보로 족히 40분 거리. 그 먼 길을 수시로 걸어와 할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아들 같은 이웃이 있다. 2022년 새해를 알리는 설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할아버지 집을 찾아와 함께 떡국을 끓여먹는데, 그 이웃으로부터 듣게 된 '강이'의 놀라운 비밀!
입춘이 훌쩍 지나고 3월도 코앞이건만 을수골은 여전히 설경을 자랑한다. 무릎 높이까지 눈이 내린 어느 날, 할아버지는 으레 개들의 집 주변부터 눈을 쓸고 길을 낸다. 그리곤 40여 년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은 뒷산으로 산책을 나간다. 늘 그렇듯 할아버지의 단짝 강이와 함께. 나란히 걷는 그 모습이 머지않아 찾아올 을수골의 봄의 풍경과 닮아있다.
세상 밖에서는 모르는 산중낙원. 이규환 할아버지와 그의 단짝 이야기, '을수골에 봄이 오면'은 2월 25일 금요일 저녁 7시 10분 <동물극장 단짝>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