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초입, 남쪽 바다 끝으로 간다. 일점선도(一點仙島), 한 점 신선의 섬으로 불리는 경남 남해. 68개의 크고 작은 섬이 모인 남해는 1973년 남해대교 개통으로 육지와 이어졌지만 쉽게 가기엔 여전히 멀다. 덕분에 남해의 자연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다. 그 자체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
온화한 해양성 기후 덕에 겨울에도 푸르다는 경상남도 남해. 가을과 겨울 사이 계절의 문턱을 넘는 남해의 풍경은 또 어떤 색일까.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47번째 여정은 발 닿는 곳마다 그 너머가 궁금해지는 곳, 경남 남해로 향한다.
단 하나의 소원을 품고, 금산 보리암
발길 닿는 곳마다 절경이라는, 남해의 첫 여정은 금산이다. 조선 개국을 앞두고 전국의 명산을 누비며 기도를 올렸던 이성계가 유일하게 응답을 받은 바로 그곳. 신라 때부터 보광산이라 불렸던 산은 이후 '비단을 두른 산' 금산으로 다시 불렸단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금산에는 제각기 다른 소원들이 숱하게 오르내리고 있다.
금산에서 보리암까지, 가는 길 내내 돌탑의 향연이다. 옛날 길손들의 안녕과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쌓았다는 돌탑은 소원의 상징이었다. 그렇다면 기도 성지 금산에서의 돌탑은 또 얼마나 간절한 바람을 담고 있을까. 차곡차곡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는 돌탑이 꼭 그 마음들을 닮았다.
자연 따라 남해에 온 2학년 삼촌, 3학년 조카의 한 집 살이
남해의 바다는 호수 같다. 파도 한 점 없이 잔잔한 수면 위로 가을볕이 부서진다. 남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손꼽히는 은모래비치를 걸어본다. 비단 위를 걷는 백사장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만큼 모래가 참 곱다.
은모래비치에 두 명의 남자 아이들이 뛰어논다. 덤블링이며 그림자놀이며 특별한 놀잇감 없이도 시간이 절로 가는 듯하다. 그런데 형제인 줄 알았던 아이들은 알고 보니 한 살 차이 삼촌 조카 사이.
할머니이자 엄마인 이정희(56) 씨는 두 아이를 위해 5개월 전 거제에서 이곳 남해까지 왔단다. 사교육을 피하고 싶어서, 자연 한가운데에 살고 싶어서 돌고 돌아 은모래비치에 정착한 가족. 덕분에 아들과 손자는 비커에 모래를 담으며, 계절이 바뀌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 더 건강하게 성장하는 중이다.
6대 째 이어온 다랭이 밭과 거북바위 남해 한 상
남해군에서 가장 신비로운 마을, 다랭이 마을로 떠난다. 산비탈 자락을 따라 108층, 680개가 넘는 밭이 겹겹이 쌓여있다. 남해의 해풍을 견딘 시금치에서 윤기가 흐른다. 수확이 다가왔다는 신호다.
360º가 모두 절경인 다랭이 밭에서 주민들이 시금치를 딴다.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나는 남해 시금치는 빛깔부터 다르다.
3대 째 이장 집안이라는 김동승(65) 씨는 이 마을에서 가장 큰 다랭이 밭을 가졌다. 조상들의 땀과 눈물로 깎아지른 다랭이 밭에는 양파, 배추, 대파, 열무가 자란다. 그는 매일 이곳의 땅을 돌보고 지키며 관광객들에게 남해 한 상을 내어준다. 동승 씨에게 남해 한 상은 대대로 이어온 가족의 자부심이자 역사다.
남해가 맺어준 인연, 독일 빵집 늦깎이 신혼 부부
남해에는 5년이 채 되지 않은, 하지만 꼭 들려야 한다는 유명 빵집이 있다.
유자, 마늘, 시금치, 멸치 등 남해산 재료를 넣고 이스트 없이 순수 효모로만 만드는 독일식 빵. 빵집 주인 한추영(59)씨는 원래 부동산 전문가였다. 그러다가 그는 40년 만에 찾은 고향 남해에서 진짜 적성을 찾았다. 독일마을에 살던 독일인 루드빅 씨 때문이었다.
그는 절반은 부동산, 절반은 빵집으로 나눠 취미로 빵을 만들던 추영 씨가 빵집을 열 수 있게 전적으로 도왔다. 빵과 관련 된 독일 책을 주고 꾸준히 맛에 대한 조언도 하며 멘토처럼, 부모처럼 그를 대해줬다. 그리고 5년 전 그에게 지금의 아내를 소개시켜줬다. 추영 씨의, 또 부부의 인생을 바꾼 루드빅 씨는 이제 가게 안 흉상 속에만 남아있다. 하지만 늦깎이 신혼부부에겐 평생토록 잊지 못할 큰 선물을 남겨줬다.
돌아온 고국! 한국에서 찾은 제2의 고향, 독일마을
여권 없이 떠나는 독일 여행. 남해의 명소로 손꼽히는 독일마을에 도착한다.
마을을 걷던 중 ‘구텐탁’ 독일식 인사로 반기는 부부를 만난다. 나라를 위해 멀리 독일에서 간호사로, 광부로 파견 갔다가 귀향한 노부부. 한때 한국에 돌아온 걸 후회하며 외로운 이방인처럼 살던 부부는 독일마을에서 비로소 행복을 얻었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끼리 얻을 수 있는, 말로 다 못할 유대감. 부부는 집 앞 골목에 광부 도르래 상을 세워두었다. 글릭아우프. 광부들이 지하 2천미터 광산에 들어가기 전 서로에게 건넨 말. 항상 행운을 빈다는 글릭아우프는 이제 독일마을 관광객에게 전해지고 있다.
집도 둥글게, 마음도 둥글게! 동그라미 귀촌 부부
해안선의 길이만 302km에 달하는 남해군은 어딜 가나 바다다. 섬의 남동쪽 끝자락, 미조항이 한눈에 보이는 동산 위를 오른다. 그곳에 나란히 자리한 3개의 황토 집. 이 중 황토집 2호는 만화 속 버섯 집처럼 모서리 하나 없이 둥글둥글한데.
평생 사각의 틀에서 살던 동갑내기 부부(67)가 예순이 되는 날 직접 만들었다는 이집의 콘셉트는 동그라미. 초등학교 동창으로 시작, 줄곧 도시에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던 부부는 나이 쉰에 멈춤을 선언했다. 그렇게 전국을 돌고 돌아 정착한 곳은 이곳 남해.
부부는 낚시 배를 사고 텃밭을 가꾸며 비로소 좀 더 가볍게 사는 삶을 실천할 수 있었다. 부부는 서로를 어리와 버리로 부른다. 앞으로의 인생 2막은 좀 더 어리버리하게 살아보자는 부부의 참신한 아이디어다. 인생길 60까지 부부는 경쟁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이제 부부는 동그라미 황토집에서 나를 놓고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나간다.
일기 할머니의 '행복으로 가는 길'
바다가 보이지 않는 산골 동네, 동천마을로 간다. 작은 동네가 한눈에 보이는 야트막한 산중턱. 볕이 잘 드는 마당에서 남해 살이 7년차 황정희(79) 씨가 텃밭 가꾸기에 한창이다.
유난히 밝은 얼굴에 세련된 옷차림만 보면 누가 봐도 '도시 할머니' 그 자체. 하지만 남편의 사업 실패부터 오랜 투병 끝에 앞서 떠나보낸 딸까지. 한평생 고단하게 이어졌던 아픔을 잊기 위해 그녀는 더 깊은 곳으로, 연고도 없는 남해까지 왔다.
그리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내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슬픔을 껴안고 살지 않기 위해. 더 먼 곳으로 풀어내기 위해. 그렇게 그녀에게 일기는 삶의 먼지를 털어내는 과정이자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가는 행복의 길이 되었다.
가족 모두가 지킨 단 하나의 땅, 모자의 양떼 목장
가을의 끄트머리. 구백 그루의 단풍나무가 있는 내산 단풍 길을 걷는다. 낙엽을 밟아가다가 잠시 멈추니 40여 마리의 양떼들이 보인다. 입구에서 양들의 먹이를 구입해 들어간다.
목장 주인 최승원(35) 씨가 돌을 골라내고 있다. 3천 평 목장 부지 전체를 관리하는 사람은 오직 승원 씨의 몫. 3년 전 시작한 이곳은 원래 승원 씨의 아버지가 소를 기르기 위해 구입했던 땅이었다.
어려운 살림에서도 모으고 모아 얻은 땅은 아버지의 꿈과 자랑. 하지만 사업 실패와 아버지의 지병으로 가정형편은 급속도로 어려워졌다. 아버지의 건강은 호전되지 않았지만 아들은 결심했다. 이 땅을 되살려보기로. 그래서 아들은 이 목장을 살리기 위해 매일 홀로 일했다.
다랭이논이라 유난히도 돌이 많은 부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 외아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보며 어머니는 매일 새벽 아들보다 먼저 일어나 양 먹이용 풀과 당근을 잘랐다. 아들에게, 가족에게 이 부지를 살리는 건 돈 이상의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모자의 농장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그리고 목장은 조금씩 그 꿈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나간 날들보다 더 찬란한 내일을 소망하며 묵묵히 인생의 언덕길을 오르는 사람들이 사는 곳 경남 남해의 이야기는 12월 4일 토요일 저녁 7시 10분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47화 일렁이다 그 마음 – 경남 남해] 편에서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