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크래프트 온 더 힐 갤러리의 이유진 개인전 ‘머리가 발을 만났을 때…(When Head Met Foot…)’

  • 전시제목 : 머리가 발을 만났을 때… When Head Met Foot…
  • 초대작가 : 이유진
  • 전시작품 : 조각 8점
  • 전시기간 : 2020년 7월 29일 – 8월 15일
  • 전시장소 : 크래프트 온 더 힐 갤러리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7길 20)

미술평론가 류병학

When Head Met Foot…

머리가 발을 만났을 때…(When Head Met Foot…)? 전시타이틀이 어디서 본 것 같다. 로브 라이너(Rob Reiner) 감독의 영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1989)가 떠오른다. 그리고 해리(Billy Crystal)와 샐리(Meg Ryan)의 ‘친구와 연인 사이’가 생각난다.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일까?

당 필자, 이유진의 신작 ‘머리가 발을 만났을 때…’를 보고 이렇게 자문했다. “사물과 작품은 연인이 될 수 없는가?” 물론 필자의 대답은 “사물과 작품은 연인이 될 수 있다.” 어떻게 사물과 작품은 ‘연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국내 미술계에 잘 알려진 이유진의 조각은 인체 조각이다. 그녀의 인체 조각은 특정인이 아닌 일반인을 모델로 삼아 제작한 작품이다. 이를테면 그녀의 일명 ‘요괴 인간’ 시리즈나 ‘미녀삼총사’ 그리고 ‘비너스’ 시리즈는 그녀의 지인들을 모델로 삼아 라이프 캐스팅(Life casting)한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라이프 캐스팅’은 몰딩(molding)과 캐스팅(casting) 기법을 통해서 살아있는 사람의 몸을 3차원적으로 ‘복사’해내는 형성과정을 뜻한다. 왜 이유진은 대량생산된 ‘마네킹’을 사용하지 않고 적잖은 노동을 요구하는 ‘라이프 캐스팅’을 고수하는 것일까? 그 점에 관해 이유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작업은 살아있는 사람을 모델로 하여 포즈를 취한 뒤 이것을 캐스팅하여 3차원으로 복사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제작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 등신상의 조각을 만들고 여기에 기타의 형태들을 조합하는 방식이다. 실재에 바탕을 둔 인간 형상이면서도 제3의 상상적 형태를 창조해내는 작업의 취지와 부합하여 이 제작기법을 이용하였다. 이렇게 실재인물을 복사해내는 제작기법을 라이프 캐스팅(Life casting)이라고 한다.”

이유진의 초기 ‘라이프 캐스팅’ 작업은 일명 ‘요괴 인간’ 시리즈이다. 2000년 초반 그녀의 일명 ‘아름다운 흉기’ 시리즈나 ‘변성하는 살’ 시리즈가 몸 밖에서 몸에 첨가되는 금속공예작품이었다면, ‘요괴 인간’ 시리즈는 아예 몸 안에서 몸 밖으로 흉기를 돌출시킨 인체 조각작품이다. 그녀의 ‘미녀삼총사’ 시리즈와 ‘비너스’ 시리즈는 바로 ‘요괴 인간’ 시리즈를 한 걸음 더 들어간 조각작품이다.

이번 크래프트 온 더 힐 갤러리에 전시되는 이유진의 작품은 총 8점이다. 2006년 제작된 구작 1점은 일명 ‘요괴 인간’ 조각작품이고, 나머지 7점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제작한 신작들이다. 그런데 이번 신작들은 머리에서 발까지 신체 전체가 아닌 신체의 부위들로 작업된 조각작품이다. <머리가 발을 만났을 때 조각(When head met foot_sculpture)>(2018)은 일종의 ‘신체-조각’인 반면, <머리가 발을 만났을 때 그릇(When head met foot_bowl)>(2018) 시리즈 3점은 일종의 ‘신체-그릇’이다. 그리고 <빅 샐러드 그릇(A big salad bowl)>(2020)과 <어머니의 배>(2020) 그리고 <소녀의 다리>(2020)도 ‘신체-그릇’이다.

나는 ‘요괴 인간’이 되고 싶다

이번 크래프트 온 더 힐 갤러리에 전시되는 이유진의 구작부터 보자. 2006년 이유진은 네덜란드 암스텔담의 캔버스 인터내셔날 아트 갤러리에서 기획한 <나우 코리아(Now Korea)>에 초대된다. 그리고 그 해 미국 뉴욕의 소더비(Sotheby’s) 아트페어를 시작으로, 2007년 네덜란드 암스텔담 아트페어 <아트 암스텔담(Art Amsterdam)>와 미국 뉴욕의 아트페어 <아트 뉴욕(Art New York)>에 참여한다. 그런데 이유진의 작품세계에 전환점을 마련한 전시는 2007년 갤러리 터치아트에서 열린 개인전이다.

2000년 초반에 제작된 이유진의 달콤 쌀벌한 ‘장신구-작품’, 즉 <아름다운 흉기>는 <변성하는 살>로 그리고 <파리와 더불어> 변화되었다. 이들 일련의 작업은 어떤 공통점을 가진다. 몸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질적인 것의 만남이다. 반지나 목걸이 그리고 브로치는 일종의 장신구로 몸에 변화를 주는 미적 기능을 가지면서 동시에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다. 특히 작가의 욕망은 일종의 ‘괴물 되기’다. 달콤 쌀벌한 이유진의 ‘요괴 인간’들은 갤러리 터치아트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첫선을 보였다.

LEE YOU JIN_Weapon_painted FRP, brass_80x50x 50cm. 2006

요괴 인간? 벰, 베라, 베로 말이다. 그들은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유진은 거꾸로 요괴 인간이 되고자 한다. 그렇다! ‘요괴 인간’은 요괴와 인간이 접목된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요괴 인간’은 요사스럽고 괴이한 인간이다. 이유진의 <아름다운 흉기> 시리즈나 <변성하는 살> 시리즈 그리고 <파리와 더불어> 시리즈에서 변화하고자 한 작품이 몸 밖에서 몸에 첨가되는 흉기였다면, 2006년 제작한 ‘요괴 인간’ 시리즈는 아예 몸 안에서 몸 밖으로 흉기를 돌출시킨 것이다.

몸 안에서 흉기가 돌출한다? 혹 브라이언 싱어(Bryan Singer) 감독의 영화 <엑스맨 (X-Men)>(2000)의 울버린(Wolverine)? 울버린은 자신의 몸 안에서 몸 밖으로 돌출하는 흉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일단의 과학자들이 관여하였는데, 나도 그들에게 납치되어서 실험 도구가 되었습니다. 내가 돌연변이라는 걸 그들이 알았다면 아마 대상에 오르지 않았을 것인데, 운이 없었던 거죠. 그들은 내 몸에 아다맨티움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발톱을 이식하였는데, 그것이 지금 울버린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손에서 나오는 칼입니다. 아다맨티움은 미국 정부가 개발한 금속으로 깨어지지 않는 강도를 지닌 물질인데, 인체에 이식이 가능한가를 시험하기 위해 제가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이유진의 일명 ‘엑스 우먼’ 시리즈들, 즉 <실버 걸>(2007)과 <블랙 걸>(2007) 그리고 <레드 걸>(2007) 또한 <화이트 걸스>(2007)는 그녀의 초기작인 <흉기(Weapon)>(2006)로부터 탄생한다. 그녀의 <흉기>는 마치 똥 싸는 포즈처럼 몸을 쭈그리고 앉은 여자의 알몸을 제작한 작업이다. 그것은 어느 일반인을 모델로 삼아 알몸을 석고로 떠낸 틀에 F.R.P로 제작하여 아크릴로 채색한 것이다. 아마 그 모델은 군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다.

필자는 쭉빵걸의 몸매에 홀딱 반해 몸 구석구석을 살핀다. 미끈한 다리와 허벅지에 눌려 삐져나온 탐스런 유방이 보인다. 헉! 쭈그리고 앉은 여자의 옥문(玉門)을 보니, 털까지 표현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필자의 시선은 그 쭉빵걸의 미끈한 바디라인을 따라 등으로 향한다. 허걱! 쭉빵걸의 등줄기에 갈고리들이 돌출해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등뼈(척추)가 몸 안에서 돌출한 듯 말이다. 엑스맨의 울버린은 손에서 갈고리가 나오지만, 이유진의 ‘엑스 우먼’은 등에서 갈고리가 나온다. 이유진은 ‘엑스 우먼’ 등에 아다맨티움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갈고리를 이식하듯 황동으로 제작된 흉기(갈고리)를 삽입해 놓은 것이다.

이유진은 우리의 고정관념에 ‘딴지’를 건다.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요괴 인간은 인간이 ‘조작한’ 괴물이다. 그렇다면 괴물은 인간이 아닌가? 이유진은 인간을 ‘요괴 인간’으로 변신시킨다. ‘돌연변이’라는 요사스럽고 괴이한 인간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그런데 인간은 돌연변이를 둘로 구분, 즉 착한 돌연변이/나쁜 돌연변이로 분리하여 서로 대결하게 만든다. 영화 <엑스맨>은 돌연변이를 인간으로 바뀌게 하는 치료제 ‘큐어’라는 약을 통해 돌연변이를 멸종시키려고 한다. 돌연변이를 멸종시키려는 인간과 대항하는 돌연변이는 나쁜 돌연변이(매그니토)이다. 하지만 인간은 좋은 돌연변이(자비에)에게 나쁜 돌연변이와 대결하도록 조작한다. 그렇다면 정작 나쁜 돌연변이는 인간이 아닌가?

신체 부위들의 엉뚱한 조합을 통한 새로운 신체 되기

이유진의 구작들은 금속공예로부터 차츰 조각을 접목시킨 작품들로 전이되었다. 그녀는 특히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를 조각의 형태로 제작해 적극적으로 작품에 접목시켰다. 이를테면 그녀가 모델을 섭외해 라이프 캐스팅을 하여 조각작품을 만든 것은 다름아닌 금속공예를 접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이다. 그녀의 작품은 금속공예를 확장하면서 동시에 조각의 영역도 확장시킨다.

LEE YOU JIN_When head met foot_sculpture_F.R.P_54x44x140(h)cm. 2018

이유진은 이번 크래프트 온 더 힐 갤러리 개인전에 <머리가 발을 만났을 때_조각(When head met foot_sculpture)>(2018) 1점을 전시한다. 그것은 신체의 부위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신체-조각’ 작품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각기 다른 팔들과 다리들을 서로 엉키고 뒤섞여 하나의 기괴한 형태로 조각된 것이라고 말이다. 만약 당신이 그 신체 부위들을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면, 그 팔들과 다리들이 한결같이 다양한 비너스의 형태에서 차용된 것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유진은 각기 다른 팔들과 다리들을 서로 엉키고 뒤섞여 하나의 기괴한 형태로 결합하여 “그 무엇으로도 정의내리기 곤란한 형태”로 표현해 “우리가 이성을 통해 신뢰하고 확신하는 인간이나 사물의 모습을 무너뜨려” 우리의 “객관적 실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의심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작가노트에 적었다.

이유진의 ‘머리가 발을 만났을 때…’ 시리즈는 필자의 눈에 발은 머리에 비해 하찮은 것으로 간주하는 일종의 ‘머리(이성)중심주의에 대해 똥침을 놓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인간에게 발은 머리만큼 중요한 신체 일부로, 머리와 발은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라고 말이다.

덧붙여 이유진의 ‘머리가 발을 만났을 때…’ 시리즈는 다양한 신체 부위들을 ‘하나’의 유기체적 신체로 귀속시키는 ‘용광로(melting pot)’라기보다 오히려 각 신체 부위들이 서로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일종의 ‘거대한 샐러드 볼(big salad bowl)’이다.

관객을 유혹하는 이유진의 텅 빈 ‘신체-그릇’

이유진은 이번 크래프트 온 더 힐 갤러리 개인전에 일명 ‘신체-그릇’ 시리즈 6점을 전시한다. 그녀의 ‘신체-그릇’ 시리즈 3점은 2018년에 제작한 것인 반면, 나머지 ‘신체-그릇’ 시리즈 3점은 2020년에 제작한 것이다. 이유진의 신작 ‘신체-그릇’ 시리즈는 급기야 금속공예와 조각의 경계를 해체시키기에 이른다.

당 필자, 이유진의 전시타이틀 <머리가 발을 만났을 때…>를 로브 라이너 감독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 연상했다. 필자는 빌리 크리스탈과 멕 라이언의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는가?’를 ‘사물과 작품은 친구가 될 수 없는가?’로 되물었다. 물론 필자는 이유진의 구작들이 ‘사물(금속공예)와 작품(조각)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유진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는 것 같다. 그녀는 한 걸음 더 나간다. 그녀는 신작을 통해 ‘금속공예와 조각이 연인이 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우선 이유진의 일명 ‘신체-그릇’ 시리즈부터 보자. 언뜻 보기에 그것은 핑크 컬러를 도색한 그릇들이다. 그런데 관객이 그 ‘핑크 그릇’들로 한 걸음 더 들어간다면 그릇의 안팎에서 신체의 일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릇 안에 부조로 두 손바닥을 펼치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된 것이나, 그릇 밑에는 부조로 오른손이 그리고 그릇 안에는 부조로 왼손이 조각되어 있는 것, 그릇의 표면이 탄탄한 히프로 제작된 것, 그릇의 표면이 배꼽으로 제작된 것이 그것이다. 이들 ‘신체-그릇’에 대해 이유진은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본인은 다양한 사람들의 신체나 사물의 부분들을 캐스팅하여 표면을 복사하고 그것을 재조합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관념적인 신체나 사물의 형상들은 파기되고 무어라 정의내리기 곤란한 형상들 즉 사람이자 사물, 신체이자 그릇과도 같은 모호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 사람의 배꼽과 그릇이 결합되거나 할머니의 엉덩이와 그릇이 결합되어 새로운 신체-그릇을 만들어내며 사람과 사물의 경계도 파기시킨다.”

차이와 다양성으로 열려진 이유진의 <머리가 발을 만났을 때>
사회질서가 강요하는 정형화된 육체의 표상에 대한 전복

이유진은 이번 크래프트 온 더 힐 갤러리 개인전에 신작 ‘신체-그릇’ 시리즈 3점을 전시한다. <빅 샐러드 그릇(A blg salad bowl)>(2020)과 <소녀의 다리>(2020) 그리고 <어머니의 배>(2020)가 그것이다. 그녀의 <빅 샐러드 볼>은 거대한 핫 핑크 컬러의 샐러드 볼이다. 매혹적인 핫 핑크 컬러로 도색된 표면에는 발과 유방 그리고 히프와 배꼽 또한 손과 다리 등이 뒤엉켜 있다. 그리고 그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체의 부위들과 사물들도 접목시켜 놓았다.

이유진_A big salad bowl_painted F.R.P_128x115x72(h)cm. 2020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샐러드 볼(salad bowl)’은 다문화주의 이론이었던 인종의 ‘멜팅 팟(melting pot)’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이론들 가운데 하나이다. ‘멜팅 팟’은 인종과 문화 등 여러 요소가 하나로 융합되는 것으로 일명 ‘인종의 용광로’로 불린다. 반면 ‘샐러드 볼’은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문화 정체성을 유지하며 사회 내에서 조화로운 통합을 이루어나가게 하는 이론이다.

말하자면 ‘샐러드 볼’은 온갖 주물을 녹여 하나의 쇠를 만들어내는 용광로가 아니라 각기 다른 채소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맛있는 샐러드를 만드는 샐러드 볼처럼 각 민족이 정체성과 문화를 지니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나라를 뜻한다고 말이다. 따라서 혹자는 “미국은 더 이상 멜팅 팟(melting pot)이 아니라 샐러드 볼(salad bowl)”이라고 말한다.

이유진의 <빅 샐러드 볼>은 신체의 부위들을 뒤엉켜 놓아 하나의 거대한 ‘신체-그릇’을 만들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유진이 작가노트에서 말했듯이 “작품 속 이질적인 표면들의 엉뚱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무언가 담아낼 수 있는 용기나 그릇 같기도 하고 또한 신체 같기도 하다.”

이유진은 거대한 핫 핑크의 ‘신체-조각’ 내부를 흰색으로 도색해 놓았다. 따라서 그녀의 <빅 샐러드 볼>은 외부와 내부 역시 차이를 드러낸다. 두말할 것도 없이 ‘신체-그릇’의 내부와 외부는 요철(凹凸)로 표현되어져 있다. 흥미롭게도 이유진의 텅 빈 ‘신체-그릇’은 마치 관객에게 무엇을 담도록 유혹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유진_소녀의 다리_painted F.R.P_74x75x73(h)cm. 2020

이유진의 <소녀의 다리>는 두 다리가 있는 일종의 ‘신체-그릇’이다. 그런데 그릇의 표면에도 다양한 팔과 다리, 손과 발이 뒤엉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릇의 표면을 이루는 팔다리들과 손발들은 성인 남녀의 신체 부위들이다. 반면 성인 남녀의 신체 부위들 사이로 서 있는 두 다리는 소녀의 다리를 라이프 캐스팅한 것으로 보인다. 이유진은 소녀의 다리를 “11살 여자아이 다리”라고 말한다.

왜 이유진은 성인 남녀의 신체 부위들이 뒤엉켜 있는 ‘신체-그릇’을 받치고 있는 두 다리를 11살 여자아이의 다리로 만든 것일까? 혹 그것은 10대의 소녀가 앞으로 겪어야 할 ‘사건’들을 암시하는 것일까? 거꾸로 성인 남녀가 10대의 소녀 시절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바램을 표현한 것인가?

이유진은 ‘신체-그릇’의 피부를 백색으로 도색한 반면, ‘신체-그릇’의 내부를 핫 핑크로 도색해 놓았다. 따라서 신체의 부위들로 인해 발생한 굴곡들이 마치 거대한 호수처럼 느껴진다. 이유진은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본인의 작업은 관념적 형상이 해체된 각기 다른 표면들이 조합되어 만들어내는 ‘신체- 그릇’의 공간을 통해 대립되고 모순되는 것들을 함께 담아냄으로써 새로운 어떤 것들의 생성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유진_어머니의 배_painted F.R.P_44x42x28(h)cm. 2020

이유진의 <어머니의 배>는 주름살이 있는 배를 라이프 캐스팅한 일종의 ‘신체-그릇’이다. ‘어머니의 배’에 주름살이 있지만 허리쯤에는 아름다운 난이 그려져 있다. 이유진은 <어머니 의 배> 피부를 백색으로 도색한 반면, 내부는 핫 핑크로 도색해 놓았다.

이유진의 <어머니의 배>는 겉은 늙은 세월을 드러내지만 내면은 여전히 핫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배’에 주름살이 있는 허리쯤에 아름다운 난을 그려놓은 것도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덧붙여 그녀의 ‘신체-그릇’은 사물과 작품이 ‘연인’이 될 수 있는 사례를 보여준다.

이유진은 다양한 해석을 유발하는 모호한 형태를 “단일한 ‘나’, 단일한 ‘사물’ 즉 고정되고 불변적인 단일한 ‘주체’를 무너뜨리고 언제나 역전 가능한 ‘나는 다른 누구(무엇)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말하자면 그녀의 <머리가 발을 만났을 때>는 “평등한 하나의 실체로서의 타자, 물질, 대상을 인식하고, 주체 중심,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인간, 인간과 물질이 대립을 초월하고 교감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이다.

이유진의 <머리가 발을 만났을 때>는 사회질서가 강요하는 정형화된 육체의 표상에 대한 전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녀의 ‘전복’은 재현주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의 작품은 사회질서가 강요하는 정형화된 육체의 표상에 대한 ‘재현’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머리가 발을 만났을 때>는 차이와 다양성으로 열려져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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