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완장’ 이 떠오르는 이유…

  • 동물보호라는 명분과 동물보호단체장이라는 완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인가?

글/김성일 펫저널 발행인

1983년에 발표된 소설가 윤흥길의 ‘완장’이란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최사장은 이리시의 시골 마을에 있는 저수지를 양어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정부로부터 사들였다. 그리고 양어장에서 물고기를 불법으로 잡아가지 못하도록 월급 5만원에 감시원을 두게 되면서 일이 벌어진다. 월급이 5만원이라 아무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이 책의 주인공 임종술이도 처음에는 ‘나를 뭘로 보냐’며 야단법석을 떨다가 “완장”을 채워 주겠다는 말에 흔쾌히 수락한다.

월급 5만원에 저수지 감시 “완장”이라는 말에 혹해서 그 일을 하겠다고 달려든 것이다. 감시원이라고 새겨다 준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의 완장이 있었지만 굳이 자기 돈을 들여서 이리시 시내까지 나가서 노랑색 바탕에 빨강색 글씨로 “감독”이라 새기고 3개의 줄을 그어 위엄 있고 잘 보이도록 만들어 1년 내내 어딜 가나 완장을 달고 다닌다.
그는 완장을 팔에 차고 나서 저수지를 바라보면서 혼자서 중얼거린다.
“오늘부터 이게 다 내 저수지여, 내 손안에 있단 말이여. 누구도 넘보지 못할 내 땅이란 말이여.”
그리고 그는 완장을 차고 중얼거렸던 말을 그대로 실행해 간다.

완장, 그것은 그에게 대단한 벼슬이 되어 어딜 가나 완장을 차고 다니면서 저수지가 자기 것이라도 되는 양 콧대 높은 행세를 한다. 그런데 저수지는 국가재산의 농업용 저수지이며, 최사장은 저수지 자체를 사들인 게 아니라 농사철이 아닌 때 저수지를 활용해서 고기를 키우는 그런 권한을 사들인 것이고, 가뭄이 들어 농사철에 물이 부족하면 당연히 국가 재산이므로 물을 빼서 농사를 짓게 해야 하는 저수지이다.

그러나 그러건 말건 임종술은 저수지를 조금만이라도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렸을 적 친구든, 한 동네 어르신이든, 심지어 자기를 고용한 최사장까지도 가만 놔두질 않는다. 낚시를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두들겨 패서 병원신세까지 지게 한다. 보다 못한 최사장이 그에게 그만 두라고 해도 그만두지 않고 막무가내로 달라붙어 권력 아닌 권력을 행사하니 골칫거리가 되어 그를 채용한 걸 후회하게 된다.

그렇다면, 임종술은 왜 이렇게 완장에 미친 듯이 매달리는가?
그가 시골에서 상경하여 이런 저런 일을 할 적에 시장 골목마다 경비 완장 차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경찰 완장 찬 사람들에게 이리 저리 수도 없이 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자신이 그 완장을 찼다 이거다. 그게 한낱 저수지 감시원 완장이라도 말이다. 사람들이 말을 걸어 와도 “내가 누군지 알고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는가? 내가 네 친구여 뭐여?”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도 같이 말 트고 하던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고자세로 돌변하니 그 꼴이 참으로 우습기도 하다. 저수지 감시원이 되기 전 실업자로 뒹굴 뒹굴 밥 벌레처럼 살던 사람이 저수지 감시원 완장 하나 찼다고 완전히 딴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년 퇴임한 초등학교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선생님은 “우리나라 전통에는 완장이라는 게 없었다. 완장은 일제 시대 일본 놈들 유물이다. 그게 뭔 벼슬이라도 된다고 그 난리를 피고 다니고 친구고 뭐고 없이 두들겨 패고 하냐”고 야단을 친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완장이 목숨보다도 중요하다. 그것이 있으면 권위가 서고, 그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되고, 그것이 있으면 권리와 힘을 앞세워 다른 사람을 제압할 수 있으니 그에게는 무엇보다 완장이 중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아 저수지 물을 모두 빼라는 관가의 통지를 받게 되자 최사장은 물을 빼야 했고 물을 빼고 나서 고기를 잡아 어느 정도 수입을 챙겨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렇게 되니 더 이상 저수지를 지킬 이유가 없어졌다. 물도 없거니와 물을 다 빼고 고기까지 다 잡아 빈 저수지인데 굳이 저수지 감시원을 둘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임종술은 이런 상황임에도 그 잘난 완장을 차고 저수지 담당 공무원, 경찰관 등과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고 다리에 부상을 입게 되어 도망 다니는 입장이 된다. 그러자 보다 못한 임종술의 어머니는 동네에서 술집 하는 김부월에게 “아가, 우리 아들 좀 살려줘, 우리 아들 살릴 사람은 너 밖에 없어” 하면서 자기 아들과 어디 멀리 떠나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결국 임종술과 김부월은 그렇게 야밤에 어디론가 떠났다.
여기까지가 완장의 대충 줄거리이다.

지난 3월 22일부터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시행되었다. 어떤 것은 시행되고 어떤 것은 유예되고 또 보류되기도 했다. 실로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혼돈의 시기이다. 이 보호법을 만드는데 동물보호단체들의 힘은 막강하게 작용했다. 동물보호라는 명분과 동물보호단체장이라는 완장은 무소불위의 권력과도 같았다. 명분이 너무 좋으니 동물보호단체장의 행보에 거칠 것도 없다. 그런데 반려동물 정책 관련하여 이런 저런 자리에서 마주치는 동물보호단체장이 있다. 그를 볼 때마다 잘, 잘못을 떠나 이 ‘완장’이란 소설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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