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서천

[동네 한 바퀴] 충남 서천, "낙낙하여라 풍요의 땅"

야호펫 2022. 6. 17.
  • 6월 18일 토요일. 저녁 19시 10분 KBS 1TV 방송

 

장항 스카이워크 전망대

 

서쪽으로는 서해와 만나고 동쪽으로는 금강과 비옥한 들녘이 펼쳐진 서천. 충남의 주요 곡창지대로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풍요의 땅이다.

 

누군가에겐 바다가, 또 다른 이에겐 들녘이 곧 삶의 터전. 땀과 눈물로 적셔서 더욱 고옥한 이곳에서 낙낙한 마음 나누며 사는 이웃들을 만나러 175번째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는 서천으로 떠난다.

 

 

솔숲과 갯벌 사이, 장항 스카이워크 전망대

 

서천의 서남단, 장항읍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1.5km의 해송 숲 일대로 첫걸음을 내디딘다.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향긋한 솔바람으로 바뀌는 숲길을 따라 걷다, 장항 송림의 명물, 높이 15m의 스카이워크를 발견한다.

 

전망대에 오른 배우 김영철은 해송림을 발아래 두고 거닐다, 너른 갯벌을 품은 서해 풍경과 마주한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도 지정된 강인한 생명력의 서천 갯벌. 그보다 더 강하고 질긴 우리 어머니들이 일궜을 기름진 땅, 충남 서천에서의 여정을 시작한다.

 

 

바위산 굴뚝에 쌓인 아버지의 땀, 장항제련소

 

장항은 과거 장항선의 종착지였고, 일제 수탈과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장항항과 제련소의 역사를 담고 있는 동네다.

 

옛 명성이 퇴색한 골목을 걷던 김영철. 한 다방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는 어르신들을 만난다. 과거 장항제련소를 다녔다는 어르신들은, 다방으로 아침을 먹으러 왔다는데. 어르신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잠시 후 주인장이 깨죽 한 그릇과 계란프라이 두 개, 커피 한 잔을 내온다.

 

보기엔 소박하지만 든든하게 속을 채워준다는 이 메뉴는 오직 장항 다방에서만 즐길 수 있는 아침 특별메뉴다. 꼭두새벽부터 일을 나가는 손님들을 위해 25년 전부터 장항 다방에 생기기 시작한 서비스란다.

 

어르신들과 모닝 세트를 즐기며, 옛날 장항제련소에서 근무했던 시절 이야기를 들어본다.

 

1930년대, 수탈을 목적으로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장항제련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비철금속을 제련했던 곳으로, 바위산에 세워진 제련소 굴뚝은 일제 수탈과 산업화를 상징한다. 화상이나 납중독으로 병원을 찾는 일도 잦았지만, 당시 약 2천 명이나 근무했을 정도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업이었으며, 제련소 복장만 입고 있으면 어디든 외상이 가능했을 정도로 호황기 시절을 보냈단다. 90년대 초, 용광로의 불은 꺼졌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바위산 제련소 굴뚝은 그 시절 가족을 위해 묵묵히 구슬땀을 흘렸던 아버지들의 자존심처럼, 여전히 우뚝 서 있다.

 

 

가족의 소원이 담긴 박대 한 상

 

바다 내음 물씬 풍기는 장항 골목에서, 박대를 말리고 있는 가게를 발견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잡아 온 박대로 어머니가 요리한다는 가게. 수심이 얕은 서천 앞바다에서 사시사철 잡히는 박대는 못난 얼굴 때문에 문전박대를 당해 ‘박대’라 불린다고 하지만, 맛을 보면 철천지원수도 문전박대는 안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별미다.

 

25년 전, 고향인 장항으로 내려왔다는 가족. 모든 건 선천성 심장 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들을 위해서였단다. 생후 2개월부터 생사를 오가는 대수술을 여러 차례 받으며, 매일 매 순간을 기적처럼 살아낸 아들이 조금이라도 공기가 좋은 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결심한 귀향. 아버지는 뱃일을 가르치고, 어머니는 식당 일을 일러주며 다른 집 자식처럼 아들이 '사람 구실' 그 하나만 할 수 있도록 애면글면 키웠단다.

 

부모의 간절한 바람 덕에 건강을 되찾고 결혼해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된 아들. 남들에겐 평범한 하루도 영겁의 세월처럼, 간절한 바람으로 살아왔을 가족이 정성으로 내놓은 박대 한 상을 맛본다.

 

 

바람의 기품, 공작선(孔雀扇) 부채 부부

 

서천에 와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동네가 있다. 바로 세모시의 고장, 한산면이다. 백제시대부터 1,500년의 역사를 이어온 한산모시는 다른 모시보다 올이 가늘고 촘촘해 짜기가 더 힘들어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는데. 그렇게 짠 한산모시는 잠자리 날개처럼 가벼워 왕에게 진상된 최고의 천연섬유였다고 한다.

 

집집이 베틀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한산 마을. 구수한 가락에 발길을 이끌자, 집 마당에서 모시를 째고 있는 어머니들을 만나는데 '한산 처녀 모시 훑듯 하다'라는 속담처럼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옛날, 등잔불 아래 모여 앉아 모시를 짜며 가족을 부양하고 생계를 꾸려왔다는 어머니들은 모시와 한평생 살아온 것이나 다름없단다. 길쌈 노랫가락엔 땀과 눈물로 모시를 짠 어머니들의 한이 서려 있다.

 

다시 길을 나선 김영철은 감나무 아래, 넓은 마당에서 부채를 만들고 있는 부부를 만난다. 부부가 만드는 '공작선'은 날개를 활짝 편 공작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전통 장인의 손길에서 탄생한 부채는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이 있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배워 약 60년 동안 공작선을 만들고 있다는 부부.

 

남편이 부채 자루를 깎고 다듬으면, 아내는 그 옆에서 무명천과 한지로 부챗살을 붙인다. 4대째 전통의 멋과 기품을 이어오고 있는 부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왔음을 짐작게 하는데. 더 이상 부채가 설 곳이 없는 시대에, 전국에서 공작선을 만드는 단 한 명뿐인 장인으로서, 변함없이 부채를 만들며 세상을 시원하게 식히는 착한 바람을 일으키는 부부를 만나본다.

 

 

텃밭 직송! 벽오리 어머니들의 무인가게

 

모내기 철, 초록 융단이 깔린 논길을 지나 주인 없는 한 가게를 발견한다. '공짜 아녀', '우린 밭에 갔슈' 구수한 말투로 적힌 팻말만 덜렁 있는 가게.

 

그곳에는 텃밭에서 직송한 듯 싱싱한 제철 나물과 고추장, 된장, 생강 등 가지런하게 진열된 품목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무인가게를 운영하는 건 다름 아닌 앞마을의 어머니들. 손수 재배한 농작물을 오전에 갖다 놓고, 오후에 와서 정산하며 12년째 운영해왔단다. 일주일에 단 3일만 문을 연다는 가게는, 운영방식도 독특하다. 같은 농작물이더라도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가격도 제각각, 내놓는 품목도 자유자재다. 물건값도 고른 만큼 알아서 돈통에 넣고 가면 끝. 말 그대로 양심이 곧 주인인 가게에서, 어머니들의 귀한 인심과 정을 느껴본다.

 

 

허들을 넘어 행복 질주, 단팥빵 부부

 

매년 겨울,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금강하굿둑을 지나, 사거리로 들어선 배우 김영철. 단팥빵만 수북하게 진열된 한 빵집에서 걸음을 멈춘다.

 

가게의 주인장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티격태격'과 '알콩달콩'을 오가는 연상연하 부부. 강원도의 한 빵집에서 제과 점장과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난 부부의 연을 맺었단다. 순탄했던 일상은 5년 전,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내의 교통사고로 한순간에 무너졌단다. 다리를 심하게 다친 아내는 다시 걷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는데. 남편은 직장도 그만두고 병원 주차장에서 쪽잠을 자면서 아내 병간호를 했고, 퇴원한 후에도 아내가 늘 업고 다니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고 한다.

 

자기 손발이 되어준 남편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아내는, 남편의 든든한 조력자로 이제는 함께 빵을 만든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함께 넘어오며 서로를 향한 믿음과 애틋함이 더욱 진해졌다는 부부. 이제는 인생의 허들을 넘어 행복의 결승선을 향해 함께 달리고 있단다. 평생의 단짝이 만드는 달콤한 단팥빵을 맛본다.

 

 

부모의 남은 시간을 돌보는 효자 아들의 콩국수

 

서천군 북부, 판교면으로 마지막 걸음을 향한다.

 

옛 판교역을 지나자 보이는 오래된 극장 건물. 극장뿐 아니라 양조장, 정미소 등 옛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모습의 마을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충남 3대 우시장이 섰던 마을로 약 8천 명이 모여 살았을 정도로 큰 동네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배우 김영철은 그때 그 시절, 마을의 전성기와 함께 청춘을 보낸 노부부를 만난다.

 

60년 가까이 남편은 이발관을, 바로 옆 가게에서 아내는 식당을 해왔다는데. 이제는 아들이 그 뒤를 이어서 가게를 운영해오고 있다. 언젠가는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장남의 책임감으로 낙향한 아들. 어머니가 물려준 콩국수 가게를 이어오며, 연로하신 부모님의 곁을 지키고 있다.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게, 곁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오히려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아들.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진한 효심이 담긴 아들의 콩국수를 맛본다.


동고동락하며 걸어온 인생 속에서, 넉넉한 마음 나누며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서천 사람들의 이야기가 6월 18일 토요일 저녁 7시 10분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75화 낙낙하여라 풍요의 땅 – 충남 서천] 편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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