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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직격, 가습기살균제 무죄 논란

  • 66회 '사람은 쥐가 아니다'

 

1994년 출시된 이후 17년간 판매 수 998만 개 이상, 지금까지 알려진 피해자는 4,114명*. 우리나라 역대 최악의 화학물질 사회적 참사, 가습기살균제다. 2011년,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입원한 산모 4명이 잇따라 사망하자 살균제 성분이 문제였다고 밝혀지며 피해는 시작되었다...

* 피해자 현황 (2021년 3월 환경부 기준)

 

가습기살균제는 크게 P계열(PHMG·PGH)과 C계열(CMIT·MIT)로 나뉜다. P계열 제품을 제조한 옥시에는 유죄 판결이 난 반면 C계열 제품을 제조한 기업은 무죄가 난 상황. 

 

두 성분이 전혀 다른 판결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판결 이후 재판에 참석했던 전문가들은 증언이 발언 취지와 다르게 인용되거나 연구결과를 선별적으로 선택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법정에서 무죄 판결이 나기까지 어떤 쟁점이 오갔던 걸까. 또다시 시작된 긴 레이스, 가습기살균제와 싸워온 지난 10년을 이제는 끝낼 수 있을까.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지난해 8월, 13년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박영숙 씨. 교회 성가대에서 소프라노를 맡을 정도로 건강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숨 쉬는 게 어려워졌다고 한다.

 

처음 입원을 한 건 2008년으로 폐 기능의 절반 이상을 쓸 수 없다는 진단을 받게 됐다. 결국 목을 절개했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지 않으면 숨 쉴 수 없을 만큼 건강은 악화되었다.

 

원인을 알게 된 건 3년 뒤,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에서 가습기살균제의 동물 흡입독성 실험 결과 폐가 딱딱하게 굳는 폐섬유화가 확인됐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해당 제품은 PHMG·PGH 성분의 제품으로 박영숙 씨가 사용한 CMIT·MIT 성분의 제품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

 

첫 역학조사 발표 후 몇 차례의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도 이루어졌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올해 1월, 법원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고 기업은 판결 뒤에 숨어버렸다. 

 

“(가습기살균제를) 내 손으로 사다가 넣어준 거니까, 기업은 무죄라는데 그럼 내가 살인자인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 김태종 /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남편

 

쥐가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 

 

재판부는 화학물질의 성분과 증상의 인과관계를 ‘동물실험’에서 찾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CMIT·MIT 성분이 폐질환 또는 천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것이 확인된 시험은 없었다’는 것. 

 

사람 몸에 나타난 증상처럼 실험쥐에게도 폐질환이나 천식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재판부의 주장이었다.

 

문제는 지난해 5월, 기도점적(기도에 성분을 떨어트리는 방식)을 통해 폐섬유화를 유발한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지만 재판부는 이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흡입노출’로 인한 결과가 아닌 ‘기도점적’으로 인한 결과는 실험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과학적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한다. 여러 실험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관련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는 과학계와 달리 재판부는 개별실험 하나에도 완벽한 인과를 요구하는 것. ‘확실한 입증이 아닌 추정에 기초한 인과관계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람과 동물의 종간 차이를 생각하지 못한 채, 실험에서 완벽한 재현이 나와야만 인정하겠다는 논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동물은 인체랑은 완전히 다른 거잖아요. 동물실험에서 재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는 건 교통사고가 재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사고가 없었다고 얘기하는 거랑 같은 거죠.” - 오지원 / 판사 출신 변호사 (前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사무처장) 

 

안전성 평가보다 제품이 먼저다? 

 

국내 최초로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를 개발한 유공(현 SK케미칼).

 

이후 1994년 11월, 해당 성분의 ‘가습기메이트’가 출시된다. ‘아이에게 안전하다’, ‘가족의 건강을 지키자’와 같은 내용의 광고와 함께 당시 제품에는 ‘인체에 전혀 해가 없다’는 문구도 표기되어 있었다. 기업은 안전성 평가를 제대로 마쳤던 걸까.

 

출시 전 유공은 서울대 이영순 교수에게 동물실험을 의뢰했다. 당시 보고서를 입수해 살펴보니, 6개월간 쥐를 이용해 흡입독성을 확인하는 실험으로, 결론은 표본 부족으로 통계학적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것. 즉 경향을 파악하는 수준 정도의 실험이었으니 더 많은 동물을 이용한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안전하다는 근거가 희박하다고 판단한 기업의 내부문건도 존재했는데... 결국 기업은 안전성 평가도 제대로 안 된 제품을 출시한 것이다.

 

“(기업이) 시험기간 완료 날짜에 반도 안 된 시점에서 ‘이 제품이 서울대에 의뢰해서 실험한 결과 안전하다고 판명됐다’라고 광고하는 건 거짓말 아닙니까 완전히” - 이영순 / 당시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2019년 검찰이 해당 사건을 기소한 후 2년에 가까운 심리가 이뤄졌다.

 

46회의 공판기일, 44권 3만3천 페이지의 공판기록, 10만 페이지에 달하는 증거기록을 가진 대형사건이다.

 

1심 무죄 판결 후 검사는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2심에는 과학계와 재판부의 관점 차이를 대비해 과학자문단을 꾸려야 한다는 방향도 논의되고 있다.

 

전례 없는 과학재판, 지금 제대로 된 책임을 물어야 반복되는 피해를 막고 사회의 안전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 방송일시 : 3월19일(금) 밤 10시 KBS 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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