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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인간이 된 개’ 이야기, 미하일 불가코프의 『개의 심장』

by 야호펫 2021.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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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케빈

 

 

'개의 심장' 표지

 

우리 삶과 반려동물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반려동물과 사람을 둘로 나눠 생각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사물인지력이 낮은 아이들이 반려동물을 의인화하는 것처럼, 반려동물을 자신의 가족으로 여기는 성인도 많아졌다. 이젠 인간의 뇌를 반려동물에게 이식해 인간으로 만들겠다고 시도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미 100년 전 구 소련에서는 이 같은 발칙한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의사가 있었다. 물론 상상 속에서 였지만.

 


발칙한 상상력, 그 너머의 현실

쁘라오브젠스키 교수는 뇌하수체의 적응성 문제를 연구 중이다. 그것이 사람의 유기체를 젊게 하는데 미치는 영향을 밝혀 내기 위해 뇌하수체와 생식기를 연결해 이식하는 실험을 하기로 한다. 그는 식당 주변 쓰레기통을 뒤지다 옆구리에 뜨거운 물벼락을 맞고 화상을 입은 떠돌이 개 샤리끄를 데려 다가, 부랑자의 시신에서 얻은 뇌하수체와 생식기를 이식한다.


경과를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샤리끄의 이마와 옆구리에서 털이 빠지고, ‘멍멍’ 짓던 소리가 ‘아-오’ 음절로 바뀌더니, 대단한 식욕을 보이며 몸무게가 늘고, 웃고 단어를 짖어 대는 지경에 이른다. 개는 점점 인간처럼 말하고 인간처럼 행동한다. 개 샤리끄가 아닌 인간 샤리꼬프가 된 것이다. 뇌하수체 이식이 개를 젊게 한 게 아니라 개를 아예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 놀라운 실험결과는 커다란 화제가 된다. 샤리꼬프는 당의 공식 자리를 얻어 공무원까지 된다.

 

 

블라디미르 보르트코 감독의 영화 <개의 심장(Sobachye Serdtse), 1988>의 한 장면

 

문제는 샤리꼬프가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인간답지는 않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고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며 사람 말을 하고 사람 옷을 입고 사람 음식을 먹지만, 인간 행동을 그저 따라하는 것일 뿐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고 윤리적인 판단을 해야 '인간답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50년 만에 출간된 『개의 심장』

 

실험을 통해 우연히 ‘인간이 된 개’를 설정하고 전개되는 기발한 이야기 『개의 심장(The Heart Of A Dog)』 (미하일 불가코프, 열린책들, 2013)은 1920년대 소비에트 혁명과 내전으로 이어지는 혼란한 시대를 살았던 의사이자 작가인 불가코프가 과학이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고 풀어낸 작품이다. 

불가코프는 1926년 발표한 이 작품에서 러시아 혁명 당시 사회 도처에서 일어난 개혁 작업들이 사람들의 생활을 오히려 황폐하게 만든 현실을 개의 시선으로 풍자했다. 그는 당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를 비꼬고 실명을 아니지만 스탈린을 풍자했다는 사유로 ‘반 소비에트 작가’로 분류돼 모든 작품의 출간과 공연을 금지 당했다. 

 

이후 불가코프는 해외 망명을 희망했지만 스탈린의 거부로 1940년 죽을 때까지 러시아에 머물렀다. 그의 작품들은 구 소련 체제의 탄압 아래 50여년 동안 제대로 출판되지 못하다가 스탈린이 죽고 1960년대 작가의 복권과 함께 출판됐지만 『개의 심장』만은 예외였다. 이 작품이 다시 주목 받은 것은 1987년 잡지 <즈나미아>에 소개되면서였다. 블라디미르 보르트코 감독은 이듬해인 1988년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암울했던 구 소련 체제의 시대 느낌을 되살리기 위해 흑백 4대3 풀스크린으로 찍었다.

 

『개의 심장』은 국내에도 ‘열린책들’과 ‘창비’에서 비슷한 시기에 번역 출간되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번역은 한국외대에서 불가코프 작품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대구카톨릭대 러시어학과 정연호 교수가 맡았다. ‘창비세계문학’ 번역은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중앙대 러시아학과 김세일 교수가 맡았다.

 


‘또 하나의 가족’에 대한 과도한 집착

최근 반려동물을 자기 마음을 털어놓는 ‘또 하나의 가족’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반려견이 사랑받는 것은 사람과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애정이 커지면서 주변에서는 개 결혼식을 하거나, 개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경우도 접할 수 있다. 개를 업고 다니거나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는 사연이 동물 TV 쇼에 여러 번 소개되기도 했다.

 

이런 반려인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이다. 반려동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은 사회성이 낮은 경우가 많다는 걱정 어린 목소리도 많다. 전문가들은 사람에게 실망해서 사람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진단을 내놓고, 사람의 대용품으로 반려동물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개의 심장』은 소비에트의 새로운 인간 창조 이데올로기를 풍자한 정치 드라마지만, 이데올로기 문제를 떠나 작가는 본질적으로 인간 사회에도 자연에서와 같은 법칙이 존재하며 ‘변화’란 일련의 과정을 무시하는 혁명적 방법이 아니라 자연의 진화와 같은 점진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인간 모습이 되어 버린 개가 쁘레오브젠스키 교수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당신한테 나를 수술해 달라고 청한 적이 있나? 좋은 일 하셨구먼! 동물을 잡아 다가 칼로 머리를 길게 썰어 줄무늬를 만들어 놓고서, 이제 와서는 싫어하고 경멸하신다 이거지. 나는 나를 수술하라고 허락하지도 않았어.”

 

개였을 때는 착하고 불쌍하던 샤리끄가 사람 샤리꼬프가 된 후에는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면을 드러내게 된 이유를 쁘레오브젠스키 교수는 한마디로 일갈한다. "무서운 것은 그가 이제 개의 심장이 아닌 사람의 심장을 가졌다는 사실이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추악한 마음 말일세."

사람은 사람 다울 때, 개는 개 다울 때가 가장 자신 다울 수 있다. 자연의 법칙을 거슬렸을 때 엄청난 재앙이 된다는 것을 『개의 심장』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 사회에도 자연 법칙과 순리가 있거늘, 국가든 반려견이든 억지로 만들어진 관계는 부자연스럽고, 결국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불가코프는 당시 소비에트 혁명으로 탄생한 새로운 사회주의형 인간을 풍자한 이 작품에서 유일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우리 가족 댕댕이도 인간이 되기 보다 개의 심장을 간직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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